그의 화면에는 신화와 자연, 유물과 유적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선 존재들이 한데 어우러집니다. 동서남북을 지키는 사신인 청룡, 주작, 백호, 현무의 도상을 차용하지만 그 모습은 위엄을 강조하기 보다 마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처럼 친근하고 귀엽게 표현되어 있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신화의 세계에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다가가게 합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존재 골렘(Golem)은 유대 민속에 등장하는 흙이나 진흙으로 만든 인간 형상의 존재로, 히브리어에서는 '아직 완전히 형체를 갖추지 못한 존재'라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신도 괴물도 아닌 이 모호한 존재는 작품 속에서 서로 얽혀 살아가는 관계망의 일부처럼 등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은 어느 위치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인데요. 마을 안에서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성스럽고 절대적인 수호신이지만, 성벽 밖의 적들에게는 공포의 괴물로 보입니다. 이는 내가 어느 경계에 서서 대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신이 될 수도, 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양가성을 보여주는 것이죠.
"경계 안의 존재에게는 보호자이지만,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오려는 타자에게는 길을 가로막는 괴물로 보일 수 있다. 동일한 형상이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신과 괴물, 보호자와 위협적인 존재로 달라지는 것이다."
연둣빛 싹을 틔우는 푸른 용, 140x200cm, 2025-26
연둣빛 싹을 틔우는 푸른 용, 140x200cm, 2025-26
귀엽게 표현된 신화적 존재와 골렘은 경계의 긴장감보다 먼저 친밀감과 호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 뒤에는 무거운 존재론적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시간의 흔적과 미세한 거친 질감이 느껴지는 작품의 표현 방식 또한 인상적인데요. 작가는 강서대묘 벽화처럼 오래된 질감을 구현하기 위해 먼저 화면에 모래를 뿌려 거친 표면을 만들고, 그 위에 형상을 쌓아 올렸습니다. 이후 물을 넉넉히 머금은 아크릴 물감을 여러 겹 얇게 덧입혀 색이 자연스럽게 번지고 스며들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세월이 느껴지는 벽화느낌과 동시에 동양화의 담채를 보는 듯한 은은한 분위기가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