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연판 부식에 쓰이는 초산에 오랫동안 노출된 탓에 시력이 나빠지면서 동판화에서 목판화로 작업을 이어갑니다. 나무판에서 표현할 부분을 남기고 배경을 조각칼로 깎아낸 뒤, 튀어나온 부분에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방식의 목판화 작업에서는 한국의 전통 풍경과 고건축의 형태와 미학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후 판화가 지닌 복제성이 미술 시장에서 작품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기 어렵게 만든다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그는 유화에 집중하게 됩니다.
침묵, 명상, 비워냄
그의 작품을 마주하며 떠오르는 단어 세 가지.
평면적인 구도에 담백하면서도 여유가 느껴지는 유화작품에는 전국을 돌며 고건축과 오래된 기물들을 눈에 담아온 시선이 화면 안에 고요히 녹아 있습니다. 그 안에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잠긴 평온한 인물의 모습입니다. 작가는 이 인물이 곧 자신이자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