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세계로 가는 문

<크리스찬 히다카:  하늘이 극장이 되고 극장이 하늘에 있으니>

2026.05.19(화) 

한 폭의 그림 안에서 여러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작가 크리스찬 히다카(Christian Hidaka)의 작품입니다. 그의 화면 안에는 동양과 서양, 현실과 이상, 종교와 신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합니다.

작가는 피카소의 작품, 나폴레옹 시대, 르네상스, 이슬람 문화, 민간 신앙 등 다양한 문화와 작가에서 받은 영감을 작품 안에 녹여냅니다. 덕분에 그의 그림은 화면 곳곳에 숨어 있는 문화적 요소들을 발견해 가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작품을 처음 마주하며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공간 속 공간'입니다. 화면 속에는 또 다른 공간이 숨어 있고, 그 공간 안에는 새로운 장면이 이어집니다. 문과 계단, 끝없이 존재하는 문, 창문과 복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게 만드는 통로처럼 느껴집니다. 

크리스찬 히다카, 밤의 플루트 연주자, 2023, 195x150cm
크리스찬 히다카, 밤의 플루트 연주자, 2023, 195x150cm

작품에서 느껴지는 고전적인 분위기 역시 인상적입니다. 이는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와 관련이 있는데요. 그는 직접 안료와 연료를 만드는 (오일) 템페라 기법을 사용합니다. 덕분에 화면 전체는 황토빛과 노란 빛이 은은하게 스며들고 색채는 강렬하기보다 깊고 안정적인 인상을 남깁니다. 마치 오래된 벽화를 바라보는 듯한 질감은 작품 속 세계를 더욱 신비롭게 만듭니다. 

황금기, 2023, 200x165cm
황금기, 2023, 200x165cm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부분은 '시점'입니다. 그는 한 화면을 통해 동서양의 원근법이 어떻게 다른지 알려줍니다. 서양의 원근법은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그리며 지금 여기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다는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반면, 동양의 시선은 하나의 지점에서 멈춰 서 있기보다 여러 시점을 따라 이동하며 풍경을 바라봅니다. 하나의 장면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변화하는 풍경을 담아냅니다. <산등성이 길을 따라>는 이러한 동양적 원근법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작품으로, 이동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의 모습을 화면 안에 담아냅니다. 또한 강렬한 색채 표현을 통해 동양 회화의 전통적인 감각과 디지털 공간을 연상시키는 현대적 분위기를 함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등성이 길을 따라, 2023, 136x272cm
산등성이 길을 따라, 2023, 136x272cm

여러 가지 시선과 문화가 공존하는 작가의 그림은 한 지점에 멈춰 서서 바라보다가도 자연스럽게 또 다른 공간으로 시선을 이동시키며 그림 안을 천천히 걷는 듯한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편집: 정란근(ddoingnow@gmail.com)


참고

1.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리플릿, <크리스찬 히다카: 하늘이 극장이 되고, 극장이 하늘에 있으니>,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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