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예술 서적 및 사진집 제작자로 명성을 쌓아온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은 1969년, 18세의 나이에 '슈타이들(Steidl)'을 설립한 이후 55년간 사진가, 예술가, 디자이너들과 협업해왔습니다. 그의 정교한 인쇄 기술과 탁월한 디자인 감각은 출판 업계에서 독보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데요, 이번 <슈타이들 북 컬쳐> 전시에서 그가 제작한 도서와 함께, 협업한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슈타이들은 출판의 전 과정(디자인, 제작, 인쇄)을 직접 관리하며 최고의 인쇄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독자적인 인쇄 기법과 기술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는 '한 지붕 아래에서 모든 과정을' 총괄한다는 철학 아래, 모든 제작 단계를 꼼꼼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책의 콘텐츠에 따라 종이, 서체, 디자인, 색상을 세심하게 구성하는 그의 작업 방식이 세계적인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권 한 권 정성을 들여 책을 만드는 과정이 담긴 영상과 깔끔함 그 자체로 작품들이 인쇄된 도서에서 그의 철학과 장인 정신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제작된 도서와 공정방식을 들여다 보면 그가 단순한 책이 아닌, 각 권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도록 정성을 다해 제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의 매력은 슈타이들의 인쇄 방식을 살펴보는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인데요, 대표적으로 미국 서부의 도시 풍경과 대중문화를 텍스트와 이미지로 결합해 재해석하는 에드 루샤(Ed Ruscha)의 <길 위에서, On the Road>가 있습니다. 이 한정판 도서는 한 장 한 장 형압 방식으로 제작되어 입체적인 질감을 느낄 수 있으며, 가격은 약 천만 원에 달합니다.
또한, 인도의 대표적인 사진작가이자 북 아티스트인 다야니타 싱(Dayanita Singh)의 아코디언 형식의 <편지를 보냈다> 작품과 각기다른 색상의 앞표지와 뒷표지에 88개의 이미지가 무작위로 구성된 <우연의 박물관>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구매자는 특정 색상이나 이미지를 선택할 수 없며, 우연에 따라 책을 손에 넣게 됩니다. 이처럼 책의 형태를 실험하는 작업은 예술과 출판의 경계를 허물며, 책이라는 매체를 새로운 예술적 경험의 장으로 확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