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김창열 회고전>에서는 그의 대표작 물방울 시리즈부터 초창기 작품까지 폭 넓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가 '물방울 화가'로 불리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입니다. 1972년 파리에서 생활하던 중, 우연히 책 위에 쏟아진 물방울과 흘러내리는 흔적을 보고 영감을 받아, 이를 회화로 옮겨낸 것이 물방울 시리즈의 시작이었습니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이 작업은 국제 전시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그의 독보적인 정체성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물방울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을 넘어선 존재입니다. 한국전쟁과 분단을 온몸으로 겪으며 마주한 아픔, 상실, 시간과 존재의 무게는 물방울이라는 은유로 응축되었습니다. 반복적으로 물방울을 그려내는 행위는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면서도 흘려보내는 의식이자 수행이되었고, 개인적 치유를 넘어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도구로 확장되었습니다.
회귀, 181.9x227.3cm, 1990
회귀, 181.9x227.3cm, 1990
"근 30평이나 되는 마굿간에서 작은 난로 하나를 때는 때라서 난방은 있으나마나 한거지. 나는 중처럼, 도인처럼 수도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쪼그리고 앉아있곤 했어. 그때 심정은 종교적인 체험을 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 였지. 바로 그 자리에서 물방울이 탄생한거야.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장 고통스러울 때 물방울이 튀어나온 거야."
물방울 SH87032, 190x300cm, 1987
물방울 SH87032, 190x300cm, 1987
작품 속 물방울은 덧없음과 무상함, 순환성을 담아내며, 관람자에게 삶의 유한함과 시간의 흐름, 감정의 깊이를 사유하게 만듭니다. 그는이러한 주제를 과장하거나 설명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한 편의 시처럼 잔잔한 울림을 남깁니다.
"전쟁과 분단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김창열에게 삶은 지극히 끈질기면서도, 동시에 덧없는 것이었다. 그는 평생을 살아남은 자로서의 책임감과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 그렇기에 그에게 물방울은, 아무리 그려도 끝내 다 담아낼 수 없었던 애도의 일기였는지도 모른다."
물방울, 89x117cm, 2006
물방울, 89x117cm, 2006
오늘날 그의 작품이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예술 언어를 다듬어온 그의 태도에 있습니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묵묵히 자신만의 언어를 표현하며 그림을 통해 기억을 치유하고 고통을 비워내며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그의 작업은 관람자로 하여금 자기 내면을 돌아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