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야

2025.10.31(금) 

뉴트럴 그레이 


선명한 빛들 사이, 어떠한 색채도 띠고 있지 않는 색 뉴트럴 그레이. 다른 사람들의 어조와 에너지를 따라가며 그들의 기분에 익숙해지고 그들과 잘 어울리고 하루를 무사히 잘 보내기 위해 애쓰며 점점 자신을 개성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곤 한다(2). 

"밝게 빛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가진 색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렇게 타인에게 시선을 두는 사이, 나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옅어지고, 어느새 '흑색의 인간'이 되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하게 된다. 


"나는 누구지?"


이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져 우리를 괴롭힌다. '나다움'이라는 단어가 흔하게 쓰이지만, 그 안에 담긴 과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미지: unsplash
이미지: unsplash

정체성

최근 다녀온 전시,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과 <고슴도치 청년: 가시에서 뿔로 전>에서도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자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계와 상호작용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생성되는 존재로 바라보며, 자아의 유동성에 대해 이야기(3)를 나눈 신윤정 작가는 이번 <고슴 도치 청년: 가시에서 뿔로> 그룹전에 참여했다. 그는 한 청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듣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신윤정, 숨,결, 90.9x72.7cm, 2025
신윤정, 숨,결, 90.9x72.7cm, 2025


<숨, 결> 작품 소개, 신윤정

우리가 살아온 삶을 지금 이 순간만 바라본다면, 때때로 모든 것이 어둡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옆으로 돌려 보면, 우리가 살아온 날들이 지층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그렇게 쌓여온 삶의 색을 보여준다. 다양한 색은 과거에 내가 색을 잃었다고 느꼈던 시간, 그리고 다시 누군가와 색을 나누고 싶었던 순간들을 함께 담고 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조용히 쌓인 감정과 시간들이 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쌓아온 삶의 흔적이 결국 나만의 색이 된다. 



청년이야기 

나는 누군가에게는 빨간색, 누군가에게는 노란색, 또 누군가에게는 초록색이었을 것이다. 나는 주로 함께 있는 상대방의 성격을 맞춰주며 그 사람의 색을 흡수하는 것이 편했고, 그 사람이 원하는 성격의 사람이 되어 나를 계속 찾아주고 좋아해 주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집에 갈 때 '정말 오늘 좋은 시간이었다. 다음에 또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마치 해야 할 숙제를 끝내어 지친 모습으로 그 모임에 나간 나를 후회하며 집에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만나면 함께 좋은 시간과 감정을 나눈다기보다, 상대방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그림자처럼 따라 하기 급급했기에.
(...)
사실 언젠가 부터는 나 자신이 무슨 색인지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많은 사람의 색깔이 모조리 합쳐져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검은색일지도 모른다.


개성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면 수 많은 물음표와 함께 '개성'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는 단어, 이미지, 기호를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내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갔다. 그의 그림은 혼란스럽고 복잡하지만, 그 속엔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혼란과 복잡함, 모든 감정들이 모여 작품에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바스키아, 미술관 시큐리티(Museum Security), 1983
바스키아, 미술관 시큐리티(Museum Security), 1983
Exu, 1988
Exu, 1988

너는 네가 누구라고 생각하니 비스코비츠? 


생물학자 알레산드로 보파의 소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에서는 스무마리의 비스코비츠가 등장한다. 그 중 카멜레온 비스코비츠는 자아에 대해 고민하며 아버지에게 묻는다. 아버지는 이렇게 답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 우리 카멜레온들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떠 있는 존재란다." 


이후 비스코비츠는 자신이 몸 색깔을 화려하게 연출하는 암컷 카멜레온 리우바를 만난다. 환상적인 색으로 자신의 몸을 바꾸는 리우바에게 비스코비츠는 어떻게 몸 피부를 창조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리우바는 답한다. 

"독창적인 색을 연출하고 싶다면 기원으로 돌아가야 해. 자기 자신이되는 비밀은 자신을 거부할 줄 아는 거야. 자신을 비워야해 그걸 할 줄 안다면 네 몸 색깔은 말을 하기 시작 할 거야."

이미지: unsplash
이미지: unsplash


내 몸 빛깔이 그녀의 몸 빛깔을 따라 바뀌는 것을 보았다. 주홍색, 진한 청색, 개양귀 비 색, 물결 무늬. 반점 무늬, 물방울 무늬! 이게 행복이라고 그녀가 말했다. (...)
나는 무지개 빛깔 같은 그녀에게 덤벼들었다. (...)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중 -


어쩌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건강한 질문이자 고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자신에게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순간의 시작이자, 나를 알아보려는 용기의 표현이기도 하다. 결국 이 질문은 '나'라는 인간과의 관계를 조금 더 좋게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된다. 


어차피 평생 알아가야 할 존재이기에,

이제는 그 질문을 너무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아 오늘의 나는 이런 색을 띄고 있구나' 

'오늘의 나도 알록달록 빛을 내고 있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바라보며, 잘 지내보자는 마음으로. 

*참고

1. 알렉산드로 보파,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 이승수 역, 민음사, 2010

2. 존 케닉, 슬픔에 이름 붙이기, 황유원 역, 윌북, 2021

3. 신윤정 작가 인터뷰, 뚜잉, 2025

4. <고슴도치 청년: 가시에서 뿔로 전> 전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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